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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내 초라한 드레스에 앙선생님이 놀라시며.."

새벽아잘살자 2010. 8. 13. 12:58

 

앙드레 김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일 저녁, 수화기 너머의 소프라노 조수미는 한참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잠깐 잔병을 앓으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어떤 패션 모델보다도 앙드레 김의 드레스를 가장 많이 입은 여인이었다.
런웨이가 아닌 무대에서다. 지난 22년간 세계 유수의 독창회 무대에서 그는 언제나 앙드레 김의 드레스만을 고집했다.
조수미가 한국 전통미를 살린 앙드레 김의 자수 드레스를 입고 한국 가곡을 부를 때면 외국 관람객들은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졌다.

"선생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된 건 88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저의 첫 귀국 독창회 때부터였어요."

당시 조수미는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국제성악콩쿨을 휩쓸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클래식계에서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신인 소프라노에 불과했다.
경제적으로도 아직 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공연이 있으면 시장에서 옷감을 사다가 동네 아주머니한테
부탁해 드레스를 지어 입었다.

이날 객석에서 조수미의 노래를 들은 앙드레 김은 '신이 내린 목소리'에 감탄하는 동시에 초라한 드레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먼저 조수미에게 연락했다. '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노래할 수 있냐'면서 '앞으로 내가 소프라노 조수미의 드레스를
지어주고 싶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20년이 넘도록 어김없이 지켜졌다. 앙드레 김은 조수미가 언제, 어떤 무대에 서든지 그에 맞는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해서 보내줬다. 조수미 역시 어떤 대단한 무대에 설지라도 반드시 앙드레 김의 드레스를 입었다.

"베르사체, 구치 등 해외 명품 드레스를 입어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마다했어요.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드레스를 입고
한국의 미를 알리길 바라는 선생님의 뜻을 잘 알았기 때문이죠."

조수미가 한국에서 독창회를 열 때면, 무대 바로 앞 자리인 C블록 1열 1번 좌석은 앙드레 김 '지정석'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던 앙드레 김은,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조수미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순간을 아이처럼 좋아했다.
자신이 조수미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임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쏟아지는 박수를 받으며 뒤돌아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게
일종의 '세리모니'였다.

"한번은 제가 그 '세리모니'를 깜빡하고 지나갔어요. 어찌나 서운해하셨던지 한달 동안이나 화를 안 푸시더라고요.
매일 같이 편지를 쓰고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하얀 꽃을 보냈더니 어느날 갑자기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전화하셨죠."

앙드레 김은 조수미가 부른 노래 중에서도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끔찍히 좋아했다. 매번 패션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백의 결혼식 장면에 이 음악을 사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조수미는 자신의 '열렬한 팬' 앙드레 김을 영원히 떠나보냈다. 더이상 그가 만들어준 드레스도 입을 수 없게 됐다.

앙드레 김과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선생님을 기리는 박물관이 생긴다면 제가 간직해온 200벌이 넘는 드레스를 기증하고 싶어요. 부산아시안 게임, 한일월드컵 등
나라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마다 나라를 대표했던 선생님의 작품들이니까요."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