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3일 (목) 13:53 뉴스메이커
[문화]‘눈물’ 먹고 자라는 뮤지컬 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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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파리의 한 오페라 극장. 프리마돈나 카를로타가 연습을 하는 도중 갑자기 무대장치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스태프들은 오페라의 유령이 한 짓이라고 수군댄다. 두려움에 떠는 카를로타는 “안전을 확보하기 전에는 무대에 서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극장을 떠난다.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 기회를 얻은 무용수 크리스틴은 이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고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새로운 프리마돈나가 탄생한 셈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대역배우 크리스틴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오페라 유령’서 대역 스타 탄생
뮤지컬 공연에서 주인공만큼 중요하지만, 관객의 관심이나 조명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배우가 있다. ‘커버’다. 흔히 대역배우라고 부르는데, 주연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올라가지 못할 때 대신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다. 연극 공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뮤지컬 공연에서는 일반화된 역할이다.
뮤지컬은 춤과 노래, 연기를 함께 보여줘야 하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연극보다 신체적인 피곤함이 더 클 수 있다. 그리고 뮤지컬 공연은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연극보다 장기공연을 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지방 공연까지 해야 하는 장기 스케줄에서 주연이 매일매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뮤지컬계에서는 대안으로 커버와 더블 캐스팅 혹은 트리플 캐스팅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뮤지컬 평론가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는 “커버나 언더스터디(커버와 비슷한 의미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배역을 커버하는 배우)가 생긴 것은 장기 공연 뮤지컬이 나오면서부터다”면서 “2001년 한국어판 ‘오페라의 유령’이 7개월 동안 장기 공연을 했는데, 그 작품을 계기로 커버가 시스템으로 정착화됐다”고 설명한다. 또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1년 내내 공연이 올라가는 나라에서는 일반화된 시스템이다”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요즘은 커버보다 더블 캐스팅이나 트리플 캐스팅을 선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외국에서는 주연 대신 커버가 무대에 서도 별다른 불만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배우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력은 있지만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커버보다 2~3명의 유명 배우가 번갈아가면서 맡는 것이 마케팅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 공연이 일반화되면 커버의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원 교수는 “오픈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커버가 보험 같은 제도다”면서 “커버를 통해 스타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배우들도 커버를 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커버가 주연을 맡아서 무대에 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연을 맡을 정도의 배우라면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아파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 연습을 할 때 커버는 주연의 연습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동선이나 조명의 위치, 노래 등을 혼자서 배워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커버는 대부분 앙상블(군무 역할을 하는 단역) 등의 배역을 맡는다. 만일 주역과 단역의 연습시간이 다를 경우 커버는 주연이 연습할 때도 가서 지켜봐야 하고, 단역의 연습시간에도 함께 해야 한다. 커버를 한다는 것은 다른 배우들보다 몸과 마음이 2배 이상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선 더블 캐스팅 선호
그렇다고 커버가 연습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커버가 아니면 그 누구도 주연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이 부르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던지는 구원투수처럼, 만약을 대비하는 커버 역시 어느 누구보다 긴장하게 된다. 신시뮤지컬 박명성 대표는 “일반 관객이 보기에 커버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도 큰 행운이다”면서 “커버로 발탁된다는 것은 연출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배우들은 능력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커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뮤지컬 ‘대장금’에서 주연인 서장금 역을 맡고 있는 김소현이나 최보영, 한상궁의 양꽃님, 다양한 뮤지컬 작품에 출연한 유채정씨가 커버를 통해 유명 배우로 성장한 대표적인 예다. 뮤지컬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롯데 커버 역할을 했던 최보영은 “당시 연출이 무대에 5번 세워준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비록 커버였지만 운이 좋게도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면서 “연출이나 함께 출연한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고 그때 경험이 현재 배우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커버를 경험한 배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본을 배울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의 주역이다”라고 말한다. 커버는 주연만큼 힘든 준비를 하지만 그만큼 인정도 쉽게 받지 못하는 설움도 많다. 또 스포트라이트도 기립박수도 없다. 하지만 커버는 주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날’을 준비하며 남몰래 구슬땀과 눈물을 흘린다.
인터뷰 | 뮤지컬 ‘대장금’의 박지원 “커버라서 부끄럽다는 생각 없어요” 박지원씨는 뮤지컬 ‘대장금’에서 한상궁의 커버와 박명이 역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무대 위에는 박명이 역으로만 출연했지만, 한상궁의 커버를 맡을 정도로 연기력과 노래를 인정받는 배우다. - 배우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1999년 말부터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연극 극단에서 1년 정도 활동하다 ‘방황하는 별들’을 시작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드라큐라’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락햄릿’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방황하는 별들’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 주연도 해봤는데, 커버를 맡으라고 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 “메인 커버를 한 것이 두 번째다.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여주인공 커버를 맡았고, 이번 대장금에서 한상궁 커버를 하고 있다. 아직 유명세나 능력 면에서 주연을 맡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대장금’처럼 대규모 창작 작품의 초연에 참여한다는 것도 배우에게는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커버라서 부끄럽거나 서글픈 생각은 전혀 없다.” - 커버는 주연만큼이나 실력이 있다는 증거인데. “주연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머리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연습을 해보면 잘 안 되는 것도 있다. 욕심은 많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을 많이 채워야 할 것 같다.” - 커버로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대장금’ 총 연습을 할 때 운이 좋게도 한상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때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무척 기뻤다. 예전에 다른 배우의 노래와 연기를 연습할 때 ‘네 역할이나 잘하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 커버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앙상블 연습과 주연의 연습 시간이 다르다. 커버는 앙상블 연습도 해야 하고, 주연의 연습도 봐야 하기 때문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지적을 받을 때는 서러움을 많이 느낀다.” - 커버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배우다. 주연 배우를 뒤집을 수 있는 미래의 주역이고, 한 번의 기회가 생겼을 때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다. 커버가 됐든 주연이 됐든 뮤지컬 무대에서는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중요성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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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뉴스메이커
출처 : 박달나무
글쓴이 : 무궁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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