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정철우의 베이스볼 in]정민철의 마지막 투구 그리고 배려

새벽아잘살자 2009. 8. 27. 09:20

한화 이글스의 2009시즌은 웃음 보단 눈물이 더 많았다.

 꼴찌로 추락한 성적은 팀의 하루 하루에 잔뜩 먹구름만 드리워놓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그동안 흘렸던 것 보다 더 진하고 오래 남을 눈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시즌이 다 끝나기 전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송진우와 정민철을 공식적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한화는 송진우의 은퇴 경기 준비에 돌입했다. 그동안 팀을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남긴 선수인 만큼

마지막 자리를 뜻깊게 만들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이다.

이날은 정민철의 은퇴식도 함께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정민철에겐 빠진 것이 한가지 있다.

그는 은퇴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혹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정민철이 남긴 기록이 송진우만 못해서? 절대 아니다. 한화 구단은 그에게도 은퇴 경기를 권했다.

정민철은 한사코 은퇴 경기를 고사했다. 구단에선 강제로 권하는 수준까지 설득했지만

끝까지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이유는 두가지. 우선 송진우 선배 만큼의 무언가를 남기지는 못했다는 겸양의 결정.

두번째이자 사실상 전부인 이유는 " 내가 물러나며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고 싶진 않다 " 였다.

정민철은 " 내가 은퇴 경기를 하려면 한 선수가 열흘간 1군 엔트리서 제외되어야 한다.

 송진우 선배처럼 꼭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만큼 그런 손해는 끼치고 싶지 않다 "

 며 은퇴 경기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연봉이 5000만원 이하인 선수가 1군에 등록될 경우 5000만원을 기준으로

등록 일수를 계산, 부족분을 보전해 주도록 하고 있다.

정민철의 은퇴 경기를 위해 엔트리서 빠질 선수라면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일 가능성이 사실상 100%다.

정민철은 열흘간 연봉을 손해봐야 할 누군가를 위한 '배려'로

자신의 선수로서 마지막 마운드에 서지 않기로 한 것이다.

팬들 입장만 보면 잔인한 결정이다. 정민철 또한 한화의 귀중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식으로 던지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민철은 부상 탓에 한국 복귀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복귀한 2002년 이후 정민철의 최다승은 12승(2007년)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의 투구에서 진한 인생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 때 이기도 하다.

정민철은 150km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던 투수다. 그의 직구는 최고의 명품이라 불렸다.

현역 최고포수인 SK 박경완이 " 1995년 슈퍼 게임때 받아본 정민철의 직구는

내가 받아본 공 중 최고였다 " 고 말했을 정도였다.

부상 이후 정민철의 볼 스피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공의 위력도 크게 떨어졌다.

그가 느꼈을 좌절과 고통, 그리고 분노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크기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삼성 배영수의 말에서 조금쯤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배영수에게 " 150km를 던지던 선수가 140km도 나오지 않을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배영수는 이렇게 답했다. " 그 답답한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리고 더 괴로운건...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

작은 상자에 갇힌 사람처럼 숨이 막혀오고 쇳덩이가 누르는 듯 가슴이 답답한 상황.

그러나 누구도 내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려 하지 않는 외로움까지...

하지만 정민철은 넘어지지 않았다. 줄어든 스피드 만큼 경험을 채워넣으며 마지막 까지 버텨냈다.

빼어난 완급 조절을 앞세워 타자들로 하여금 130km대 중반의 공을 150km처럼

느끼게 하며 마운드를 지켰다.

소리내어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진 않았지만 그가 공을 던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인내의 진짜 힘'을 알려 주었다.

비록 그의 마지막 투구는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그의 투구 속에 담겨 있던

의미까지 잊혀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선수 정민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정철우 이데일리 야구 전문 기자 butyou@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