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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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시즌을 끝으로 사실상 요미우리에서 퇴단하는 이승엽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 연합뉴스 |
'국민타자' 이승엽(34)은 그야말로 '최악'과 '굴욕'의 한해를 보냈다.
이승엽은 올 시즌 56경기에 출장해 타율 0.163 5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후 첫 1할대 타율. 플레이오프에서는 단 한차례 대타로 출장하는데 그쳤고,
주니치와의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도중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참담함도 맛봤다.
현재 이승엽은 요미우리와의 재계약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여기에 올 시즌 7억엔(추정)이라는
일본 내 최고 연봉을 받았기 때문에 영입을 희망하는 구단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물론 일각에서는 몇몇 구단들이 올 시즌 이승엽 연봉의 10%도 안 되는 5,000만엔에 영입할 수 있다는
추측성 보도도 흘러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이승엽은 12개 구단 어디든 상관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 스포츠 호치 > < 산케이 스포츠 > < 닛칸 스포츠 > 등 일본의 언론들은 26일 일제히
이승엽의 향후 거취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다.
이승엽은 이날 인터뷰에서 "내년에도 일본에서 뛰고 싶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구분은 없다"
며 일본 내 12개 구단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선수생활의 마지막 1년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
하지만 지금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가기 전 일본에 나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일본 내에서 실추된 명예를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연봉은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이승엽은 풀타임 주전을 보장받을 경우 여전히 2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타자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고질적 부상부위인 왼쪽 엄지손가락이 완벽히 회복 되고, 심리적인 안정이 뒷받침됐을 때의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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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은 가시밭길을 걸어온 박찬호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 연합뉴스 |
이승엽은 다음 시즌 한국 나이로 36살이 된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에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박찬호(37·피츠버그)는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
90년대 LA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박찬호는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불이라는
'잭팟'을 터뜨리며 빅리그 10위권 내의 연봉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잇따른 부진과 부상 악몽으로 실패한 FA 계약이라는 비난에 휩싸였고, 결국 샌디에이고 생활을 끝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2007년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그는 이전 시즌 약 1,550만 달러의 연봉이
60만 달러로 대폭 감소하는 굴욕을 맛보고도 끝까지 메이저리그 도전을 이어나갔다.
뉴욕 메츠에서 휴스턴, 다시 친정팀인 LA 다저스를 거쳐 필라델피아와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고,
웨이버 공시 후 시즌 후반기 피츠버그에 안착했다. 2005년부터 6년간, 무려 8개 팀을 전전한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박찬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올 시즌 동양인 메이저리그 최다승(124승)의 위업을 달성했고, 많은 야구팬들은 존경의 박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에서도 그의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의식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이승엽도 마찬가지다. 이승엽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 잔류를 희망, 가시밭길을 자처했다.
선택의 폭이 크지 않지만 분명 그를 원하는 구단은 있다. 물론 높은 연봉도, 주전 보장도 되지 않는 힘든 싸움이
앞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바 롯데 시절, 플래툰 시스템의 설움 속에서도 팀 내 최다 홈런(30개)을 기록했다.
최고의 명문 요미우리로 이적한 후에는 톱클래스 선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며 팀 내 4번 타자 자리를 꿰차
4년 장기계약을 보장받았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스스로 손에 거머쥔 명예였다.
현재 이승엽의 가장 큰 숙제는 역시 자신감 회복이다.
일본 투수들에게 자신의 방망이가 통하지 않는 불안감이 이어지다보니 타격 매커니즘과 상관없이
연신 허공만을 갈랐다. 약점인 몸 쪽 공에 대한 대처도 보완해나가야 한다.
이미 올 시즌 최악의 경험을 한 그에게 더 이상 떨어질 곳은 없다. 이제는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도전의식을 잃지 않은 이승엽이 다음 시즌 '국민타자'다운 위용을 과시할지, 저 멀리 현해탄을 건너올 낭보가 기대된다.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