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의정부이글스님 : 노송의 전설은 계속된다!!! (다음게시판에서,,)
오늘은 회장님이 마운드에 서는 마지막 날입니다. ..
언젠간 이런날이 오리라 각오도 했었는데
저의 영웅 정민철에 이어 회장님까지 이제 정든 대전구장 마운드를 떠나게 되셨습니다.
더이상 이분에 대해 무슨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야구팬이라면 팀을 막론하고 이분에게 감히 험담을 할수 있는 이가 있을까요?
오늘 저는 정민철을 떠나 보낼때 미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갚기 위해 대전으로 갑니다.
회장님의 마지막순간을 함께 해야 하는것이 저에겐 더없는 영광일겁니다.
1. 전설의 서막!! - 아마시절의 송진우
세광고 시절 혼자서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어냅니다.
아이큐140의 빠른 두뇌회전과 강속구를 앞세워 그는 그렇게 최강의 자리를 굳히는듯
햇으나 동국대로 진학하면서 고교시절 혹사의 후유증으로 3학년때까지
마운드에 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타자로써의 송진우도 굉장히 강력한 포스를 뿜었엇죠
여담이지만 kbsn의 해설위원인 김용철씨는대학시절 타자 송진우가 천적이었다고 합니다. ㅎㅎ
86년에는 150미터 짜리 대형홈런을 터트릴만큼 대단했었다고 합니다.
타자로써의 능력은 프로에 와서도 투수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면서 증명이 됩니다. ㅎ
88올림픽 출전을 위해 데뷔를 한시즌 늦추면서 참가할정도로 당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습니다.
그 전설의 날개짓은 시작됩니다.
2. 빙그레 시절 송진우 - 전설의 시작
데뷔 첫해 첫경기 완봉승을 시작으로 빙그레 마운드의 에이스로 군림하기 시작합니다.
92년에는 19승 과 17세이브(25세이브포인트)로 다승과 구원을 동시 석권합니다.
그러나 엠비피를 놓치죠 당시 김영덕 감독의 밀어주기 논란에 휩싸여
그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죽도록 던진 송진우는 평가절하 됩니다.
그랬지만 언제나 그는 빙그레 마운드의 에이스 였습니다.
실제 93년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100이닝을 넘기지 못한적이 없엇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던 사나이 였습니다.
3.휘어질 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래서 아름다운...........
고교시절 혹사로 그렇게도 고생했지만 야구밖에 모르고 야구 밖에 할줄 아는게 없던
이 사내는 92년 그렇게도 고생을 하더니 93년 처음으로 으스러 집니다.
100이닝을 넘기지 못했고 제대로 된 피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5년 96년 13승과 15승으로 다시한번 부활을 알렸습니다.
담배는 펴본적 없고 술도 거의 먹지 않는 몸에 나쁘다는것은 철저히 배척하는 그의
정신이 만들어낸 성과 였습니다.
그러나...33살 이 되던 97년과 98년 그는 사상 처음으로 4점대 중반의 방어율로 B급투수로
전락합니다.
이때 많은 이들은 그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당시만해도 30살에 재기하고 부활한다는 것은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때였죠...그러나 그는 보란듯이 99년 15승을 해내며 이글스 첫우승을
온몸으로 이끌어 냅니다.
불같은 강속구 대신 정교한 제구력과, 빠른 두뇌회전과 판단을 앞세워
다시한번 정상급 투수의 반열에 오릅니다.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진정한 노송 ......그가 송진우 였습니다.
4. 회장님이 되다.......- 그가 존경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
99년 우승을 이끌었고 그해 3년간 7억원의 계약을 끝마친 상태에서
프로야구사에 한획을 그은 선수협 파동이 일어납니다.
많은 선수들이 권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지만 당시로선 상상할수 없엇던 일이기에
구단과 캐비오와 마찰이 깊어졌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조금은 의외인 송진우가 회장님으로 전면에 나섭니다.
평소 다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성격과 야구 이외에 나서는것을 싫어하는 그가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대변자로써
충실히 역할을 수행합니다. 당시 기자들은 송진우 였기에 가능했다 라는 말을 할정도로
최선을 다해 선수협을 이끕니다. 당시 한화의 부단장도 오히려 그이후로 그를 더 신뢰 했다
라고 할정도 였죠..
그해 선수협에 참가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후유증으로 참담한 성적을 냈을때
그는 오히려 혹독히 자신을 몰아붙여 13승을 하면서 그가 왜 회장님이고 존경받는 선수인지
다시한번 증명해 냅니다.
5. 야구는 그의 모든것........
일평생 야구 밖에 모르고 야구를 위해 야구를 하기 위해 나쁜건 쳐다도 보지 않는 사내...
본인 스스로 납득하기 전까지 마운드에 서겠다는 사나이.....
자신의 두 아들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인지.....
둘다 야구를 시작햇죠 ㅎㅎㅎ
야구 ...........이 두글자는.........아마도 그에게 인생인거 같습니다..........
일반 직장이었으면 부장님 소릴 들었을 나이에
자신의 아들뻘 선수들과 땀을 흘리며 마운드에 서있는 그는
이시대 40대에게...아니...나이와 시련에 발목 잡혀 주저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자 한줄기 빛 이 되었습니다..........
6. 전설은 계속된다!!!
전설은 끝이 아니라 ing 입니다. 이제 송진우는 그의 팔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후배들을 통해 그 전설을 이어가게 될겁니다.
투수로써 200승과 100세이브 3000이닝 2000탈삼진 정말 투수로써 할수 있는 모든것을
그는 이뤄냈습니다.
항상 특급이라곤 할수 없었지만 언제나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그어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버티는 노송처럼 그는 언제나 한결같이 그자리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전설이 되어 떠나지만 그의 정신은
이어져서 계속 될것입니다.
오늘 벌어질 은퇴경기처럼 자신의 전설을 후배가 이루게 계속 돕고 지켜줄것입니다.
주요 기록
기록
날짜
상대팀
장소
경기 내용
종전 기록
데뷔전
1989,4,12
롯데
완봉승
노히트 노런
2000,5,18
해태
광주
선발 9이닝, 4사구 3개, 6탈삼진, 무피안타, 무실점 승리 투수
통산 11번째 - 정민철(1997년)
개인 통산 최다승(147승)
2002,4,23
SK
청주
선동열 (146승)
개인 최초 150승
2002,5,19
삼성
대전
개인 최다 탈삼진 (1701개)
2004,5,22
기아
대전
선발 등판 5회 2사 김경진을 삼진으로 잡음
이강철 (1700개)
최고령 무사사구 완봉승(39살 6개월 22일)
2005,9,8
SK
인천
4-0 승
박철순 (38살 5개월)
11시즌 두자리 수 승리
2005,9,14
기아
대전
선발 등판 5⅔이닝 동안 6안타, 4볼넷, 2실점, 9-2 승
개인 통산 첫 200승
2006,8,29
기아
광주
선발 5이닝, 4피안타 1실점, 10-1승
투수 최고령 등판 (41살 3개월10일)
2007, 5,26
두산
대전
9회 1-3 등판
최고령 세이브 (41살 3개월 15일) [1]
2007,5,31
롯데
사직
9회초 2-5에서 등판 (유격수 땅볼, 삼진, 2루 땅볼)
박철순(40살 4개월 18일)
최고령 홀드(41세 3개월 10일) [2]
2007,6,5
현대
수원
6회 1-4에서 등판 (1⅔이닝 2피안타 2삼진 1볼넷 무실점)
최고령 승리 투수(42세 3개월 9일) [3]
2008,5,25
삼성
대전
선발 등판(5이닝 3피안타 1실점)
송진우 (개인 통산 206승 147패)
개인 통산 첫 2,000 탈삼진
2008,6,6
히어로즈
대전
8회 2사후, 송지만 타석때 2-2 상황에서 헛스윙 삼진
최고령 완투 (만 42세 5개월 9일)
2008.7.25
롯데
사직
선발등판(5회말 2사후 강우콜드)
송진우 (만 39세 6개월 23일)
개인 통산 첫 210승
2009.4.8
두산
대전
6회초 0-2에서 등판(1 2/3 이닝동안 탈삼진 2개)[10]
개인 통산 첫 3,000이닝
2009.4.9
두산
대전
7회 무사에서 등판(2/3이닝)
정민철을 떠나보낼때 슬픔과 안타까움이었다면 회장님을 보내는 심경은 경외감입니다.
정말로 좋아하지 않을수 없고 존경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회장님으로 인해 우리 이글스팬들은 자랑스러워 할수 있었습니다.
최강팀도 아니고 역사가 아주 깊은 전통의 명문도 아니고 엄청난 관중흡입력을 가진 구단도
아니지만 이글스팬들이 어깨펴고 자랑스러워 할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
그의 발걸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에 존경의 마음 가득담아 그를 보내고 오겠습니다
ps.글이 또 삭제 되는 오류가 나는군요 3시쯤 올렷었는데 검색이 안되네요...
읽으신분은 지겹겠지만 다시 올리고 저는 지금 출발합니다. 추억을 만들러.........